경주 여행과 황남빵의 아쉬운 경험
얼마 전 나는 가족과 함께 경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6월 중순이라 날씨가 무덥지 않아 펜션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대릉원을 방문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여행의 마지막 날, 빵을 좋아하는 아내가 경주의 명물인 황남빵을 맛보고 싶다고 제안해 대릉원 근처 빵 가게에 들렀다. 5개 정도만 구매하려 했으나, 모든 가게가 낱개 판매는 하지 않고 기념품용 세트로만 판매한다고 답했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섰고, 맛도 보지 못한 채 실망감만 안고 귀가했다. 또한, 대릉원 주변의 보도블록 공사와 관광지 내 서비스는 정부의 단기적 사고를 보여주는 사례로, 비즈니스뿐 아니라 공공정책에서도 고객 중심의 사고가 부족함을 느끼게 했다.
황남빵의 유래와 역사
황남빵은 경주시 황남동에서 1939년 최영화 옹이 처음 만들어낸 한국식 팥빵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최영화는 조상 대대로 팥으로 떡을 만들던 전통을 바탕으로 밀가루 반죽에 팥앙금을 넣어 새로운 빵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가게 이름 없이 판매되었지만, 동네 주민과 학생들이 ‘황남동 빵’이라 부르며 자연스럽게 황남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재 황남빵은 경상북도 지정 명품이자 경주시 전통음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 빵은 얇은 피에 팥앙금이 가득 차 있고, 국산 팥을 사용해 인공감미료나 방부제를 넣지 않는 수제 방식으로 유명하다.
황남빵은 경주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관광객들에게 선물용 기념품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인기는 몇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먼저, 86년의 긴 역사를 가진 황남빵은 신라의 정취를 담은 빗살무늬 문양을 통해 경주의 문화적 가치를 상징한다. 이는 관광객들에게 경주의 역사적 매력을 느끼게 한다. 또한, 팥앙금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황남빵은 달콤하면서도 지나치게 달지 않은 맛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남녀노소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특히 갓 구운 빵은 바삭한 겉과 촉촉한 속으로 큰 호평을 받는다. 게다가 깔끔한 포장과 대량 구매 시 제공되는 택배 서비스는 선물용으로 적합해 관광객들에게 편리함을 더한다. 하지만 이런 인기에도 불구하고, 황남빵 가게의 판매 방식은 단기적 사고의 한계를 드러낸다.
단기적 사고의 악영향: 황남빵 판매 방식의 문제점
내가 겪은 황남빵 구매 경험은 자영업자들이 단기적 사고에 빠져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다. 가게마다 낱개 판매를 거부하고 세트로만 판매하는 정책은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다. 먼저, 고객의 수요를 무시하는 태도가 문제다. 나는 단지 황남빵의 맛을 보고 소량 구매해 경험을 공유하거나 추가 구매로 이어지길 바랐다. 마트에서는 시식 코너를 운영하며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으려 노력하는데, 황남빵 가게는 낱개 판매를 전혀 하지 않음으로써 잠재 고객을 놓치고 있다. 이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나 관광지라는 지리적 이점에 안주하려는 태도로 보인다. 또한, 낱개 판매를 하지 않는 이유가 선물용 세트 판매에만 집중하려는 전략이라면, 이는 새로운 고객을 유도하기보다 기존 수요에만 의존하려는 단기적 사고다. 낱개 판매를 위해 별도의 준비 과정이 필요할 수 있지만, 이는 고객 경험을 개선하고 장기적인 충성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노력 부족은 결국 고객의 불만과 외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혁신의 부재도 문제다. 혁신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고객의 작은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낱개 판매를 허용하거나 시식 기회를 제공한다면 더 많은 고객이 황남빵의 맛을 경험하고, 이는 추가 구매나 입소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작은 변화조차 시도하지 않는다면, 가게는 경쟁에서 뒤처지고 장기적인 존속이 어려워질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경계해야 할 점
황남빵 사례는 자영업자들이 단기적 사고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어떤 점을 경계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첫째, 고객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다. 고객의 수요를 무시하고 기존 방식에 고착되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어렵다. 낱개 구매를 허용하는 것 같은 작은 요청만으로도 고객 만족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둘째,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관광지라는 이점에 안주하지 않고, 고객 경험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제품 개발, 서비스 개선, 혹은 마케팅 전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셋째, 장기적 비전의 부재는 위험하다. 단기적인 수익에만 집중하면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이 약화된다. 고객의 신뢰와 충성도를 구축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공의 열쇠다.
정부의 단기적 사고: 대릉원 사례
비즈니스뿐 아니라 정부의 단기적 사고도 관광객의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릉원 방문 중 겪은 몇 가지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먼저, 대릉원 주변에서 진행 중이던 보도블록 공사는 관광객의 동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작업자들은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공사 구역을 띠로 둘러싸 작업했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던 우리 가족은 좁은 통로와 장애물로 인해 매우 불편했다. 유모차를 사용하는 가족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광객의 이동 편의는 전혀 배려되지 않았다. 고객중심의 매뉴얼 부재로 보였다. 둘째, 대릉원 내 화장실은 내부가 지나치게 추웠다. 시원한 정도를 넘어 마치 냉장고처럼 느껴질 정도였고, 이는 특히 어린아이와 함께 방문한 관광객에게 불편함을 초래했다. 게다가 화장실에는 고가의 다이슨 에어블레이드 두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첨단 장비를 도입한 것은 좋지만, 과도한 냉방과 함께 필수적이지 않은 고비용 설비에 자원을 투입한 것은 예산 낭비로 보인다. 셋째, 대릉원의 유모차 대여 서비스는 24개월 이상의 아이는 이용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었다. 넓은 대릉원을 48개월 아이가 걷기란 쉽지 않았고, 이로 인해 가족 단위 관광객의 불편은 가중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정부가 관료 중심의 사고로 자원을 배분하며 관광객의 실제 필요를 간과한 결과다. 고객 중심의 사고로 전환하고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한다면, 세수를 아끼면서도 관광객 만족도를 높이는 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관광산업과 일본의 비교: 서비스 품질과 역량
관광지를 찾는 첫 번째 이유는 대릉원 같은 오래된 건축물이나 자연경관을 감상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실제로 관광객이 체감하는 관광의 질은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서비스와 직결된다. 이는 국내 관광객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일본, 중국, 대만 같은 인근 국가와 비교하며 여행지를 선택한다.
한국 관광산업의 역량을 일본과 비교해 보면, 서비스 품질과 인프라 면에서 개선이 필요한 점이 많다. 2014년만 해도 한국과 일본의 외국인 관광객 수는 각각 1420만 명과 1341만 명으로 비슷했지만, 2015년 일본은 1974만 명으로 한국(1323만 명)을 앞질렀다. 2024년에는 일본이 3687만 명을 기록하며 2030년 6000만 명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반면, 한국은 1633만 명으로 10년째 1000만 명대에 머물러 있다. 관광수입에서도 일본은 2023년 341억 달러를 기록하며 한국(134억 달러)의 2.5배 이상을 달성했다.
일본은 도쿄, 오사카, 홋카이도 등 지역별로 특색 있는 관광 콘텐츠와 교통 인프라를 촘촘히 구축했다. 예를 들어, 홋카이도 온천투어나 다카마쓰 우동투어는 지역의 고유한 매력을 강조하며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반면, 한국은 관광 인프라와 콘텐츠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부산(16.0%)이나 제주(10.1%) 같은 지역은 방문율이 낮다. 한국의 관광지는 종종 ‘포토 스폿’ 위주로 단순화되어 체험형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일본은 관광안내체계와 서비스 품질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2011년 연구에 따르면, 일본은 보행자 지도, 관광안내소 접근성, 버스 정보의 유용성 등이 개별 관광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반면, 한국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다.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T 같은 내수 특화 앱은 해외 카드 결제나 외국 전화번호로 이용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IT 갈라파고스’라는 비판을 받는다. 한국관광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불만 80%가 가이드의 쇼핑 강요와 관련이 있어 서비스 품질 개선이 시급하다.
한국의 외국인 관광객 재방문율은 2019년 58.3%에서 2024년 54.2%로 감소했으며, 이는 관광 콘텐츠의 다양성 부족과 서비스 품질 저하가 원인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은 지역별 관광 콘텐츠와 높은 서비스 품질로 재방문율을 유지하며 2023년 약 18조8000억 원의 관광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은 17년째 관광수지 적자를 기록 중이며, 2023년 적자는 138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 관광산업의 도약을 위한 제언
황남빵 사례와 대릉원에서의 경험은 비즈니스와 정부 모두 단기적 사고와 고객 중심 서비스의 부족이 공통된 문제임을 보여준다. 관광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몇 가지 인식의 재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고객 중심의 서비스 혁신이 중요하다. 황남빵 가게가 낱개 판매를 통해 고객 경험을 개선할 수 있듯, 관광산업도 외국인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다국어 안내, 결제 시스템 통합, 체험형 콘텐츠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또한, 일본처럼 지역의 고유한 매력을 살린 관광 상품을 개발해 서울 중심의 관광 구조를 분산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경주의 황남빵을 단순한 선물용이 아닌 현지 체험 프로그램, 예컨대 빵 만들기 워크숍으로 확장할 수 있다. 서비스 품질 향상도 필수적이다. 관광업 종사자에 대한 교육과 서비스 표준화를 통해 쇼핑 강요 같은 불만을 줄이고 고객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이는 재방문율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관광객의 동선과 필요를 고려한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 대릉원처럼 주요 관광지에서는 유모차나 휠체어 접근성을 높이고, 화장실 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하며,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위한 유연한 서비스(연령 제한 없는 유모차 대여)를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기적인 관광객 유치(단발성 페스티발 개최)에 집중하기보다 지속 가능한 관광산업을 위해 인프라와 콘텐츠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협력으로 지역 관광의 매력을 높이고, 한국관광 데이터랩 같은 데이터 기반 정책을 통해 관광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
황남빵과 한국 관광산업의 미래
황남빵은 경주의 상징이자 오랜 전통을 가진 훌륭한 제품이다. 하지만 단기적 사고로 인해 고객의 소소한 요구를 외면한다면, 그 인기와 명성은 점차 퇴색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관광산업은 K-컬처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품질과 콘텐츠의 한계, 그리고 정부의 관료 중심 정책으로 인해 일본에 뒤처지고 있다. 황남빵 가게의 낱개 판매 거부와 대릉원의 불편한 공사 및 서비스 사례에서 보듯, 사소한 부분에 대한 인식의 재고와 고객 중심의 혁신이 선행되어야 관광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며, 이는 비즈니스와 국가 관광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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